토마스 투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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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토마스 투헬은 독일의 축구 감독으로, 선수 시절에는 TSV 크룸바흐 등에서 활약했으며, 무릎 부상으로 25세에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2000년 VfB 슈투트가르트 U-19팀 감독을 시작으로 지도자 경력을 시작하여, 1. FSV 마인츠 05,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파리 생제르맹 FC, 첼시 FC, FC 바이에른 뮌헨 등을 거치며 여러 우승을 기록했다. 특히 첼시에서는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2025년부터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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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투헬 - [인물]에 관한 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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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수 경력
토마스 투헬은 현역 시절 수비수였다. 크룸바흐에서 태어난[7] 그는 아버지 루돌프(Rudolf)가 지도하는 지역 구단 TSV 크룸바흐에서 활약했다.[317] 1988년 FC 아우크스부르크 유스팀으로 이적했지만,[317] 19세에 방출되면서 1군 경기에는 한 번도 출전하지 못했다.[317] 당시 유소년 코디네이터 하이네르 슈만은 "그는 모든 것을 쏟아붓는 열정적인 선수였지만, 단호하고 요구가 많아 동료들과 충돌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7]
투헬은 2000년 VfB 슈투트가르트 U-19 팀 감독을 시작으로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5년 후 FC 아우크스부르크 유소년 팀 조직인으로 3년간 일했다.[320] 2008년에는 1. FSV 마인츠 05 U-19 팀을 U-19 분데스리가에서 우승시키고, 2009-10 독일 분데스리가 개막 직전 1군 팀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방출된 후, 투헬은 1992년 2. 분데스리가 팀인 슈투트가르터 키커스에 입단했다.[13] 1992-93 시즌에 8경기에 출전했고,[8] 1993-94 시즌 이후 키커스 1군에서 제외된 그는 레기오날리가 쥐트 팀인 SSV 울름 1846에 합류했다.[8] 센터백으로 활약하며 1998년 무릎 연골 부상으로 25세의 나이에 은퇴할 때까지 SSV 울름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9]
3. 지도자 경력
위르겐 클롭의 후임으로 2015년 7월 1일부터 3년 계약으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감독을 맡았으나,[298] 2017년 5월 30일 사임했다.[299]
2018년 5월 14일, 파리 생제르맹 FC와 2년 계약을 체결하고,[300] 2019-20 시즌 리그와 컵 대회를 포함한 국내 4관왕, UEFA 챔피언스 리그 클럽 사상 최초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2020년 12월 24일, 파리 생제르맹 감독에서 해임되었다.[301]
2021년 1월 26일, 프랭크 램파드의 후임으로 첼시 FC 감독으로 취임하여,[302][303]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이끌고 2021년 6월 4일, 4년 재계약을 맺었다.[304]
2023년 3월 24일, 율리안 나겔스만의 후임으로 바이에른 뮌헨 감독으로 취임했으나,[308] 2024년 2월 21일 성적 부진으로 2024년 6월까지만 감독직을 수행하고 사임하기로 발표되었다.[309]
2024년 10월,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 취임을 발표하고, 2025년 1월부터 지휘봉을 잡을 예정이다.[310]
3. 1. 초기 경력
토마스 투헬은 2000년에 랄프 랑닉에 의해 VfB 슈투트가르트의 유소년팀 코치로 고용되어 코치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선수 개발을 도왔으며, 마리오 고메스와 홀거 바트슈투버는 그에게서 훈련을 받아 클럽의 주전 선수가 되었다.[10] 투헬은 2004–05 시즌에 클럽의 19세 이하 팀을 이끌고 U-19 분데스리가에서 우승을 차지했다.[10] 그러나 구단은 그의 거친 지도 스타일과 행동 때문에 계약을 갱신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그는 그 시즌 이후 팀을 떠났다.[12]
2005년, 투헬은 FC 아우크스부르크로 돌아왔다. 구단 스포츠 디렉터 안드레아스 레티히는 투헬의 전술적 규율에 대한 구단의 존경심이 그를 유소년팀 코디네이터로 임명하게 된 이유라고 언급했다.[11] 그는 UEFA 프로 라이선스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용되었으며, 이후 에리히 루테뮐러의 지도 아래 쾰른에서 6개월 반 과정으로 라이선스를 취득했다.[12]
투헬은 3년 동안 코디네이터 직을 맡았으며, 2007–08 시즌에 FC 아우크스부르크 II의 1군 코치직을 맡으면서 시니어 클럽 감독으로 전환했다.[13] 아우크스부르크 II에서 그는 율리안 나겔스만을 포함한 팀을 지도했는데, 나겔스만은 부상에 취약한 수비수였으며, 2008년 투헬의 지시로 클럽의 스카우트를 맡게 되면서 지도자 경력으로 전환했다.[14] 투헬은 또한 경기 중 심판에게 거친 언행을 하는 것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그 결과 바이에른 축구 협회(BFV)로부터 벌금을 자주 받았다.[12] 2007–08 란데스리가 바이에른-쥐트 시즌이 끝날 때, 투헬의 아우크스부르크 II는 4위를 기록했다.[15]
투헬은 현역 시절 수비수였다. 유스 클럽 TSV 크룸바흐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하여, 1988년부터 당시 4부 리그에 속해 있던 FC 아우크스부르크로 이적했다. 이후 선수 경력을 이어갔지만 2부 리그의 슈투트가르터 키커스가 최고였으며, 1998년 무릎 부상으로 인해 24세의 나이로 은퇴했다.
은퇴 직후부터 지도자를 지망하여,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대학에 다니며 지도자 자격을 취득했다. 26세에 VfB 슈투트가르트 U-15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육성 분야에서 이름을 알렸다.
3. 2. 마인츠 05
2009년 8월 3일, 1부리그로 승격한 1. FSV 마인츠 05의 새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마인츠와 2년 계약을 맺었고,[321] 마인츠 U-19 팀의 감독도 겸임하였다.[322] 2010-11 시즌 초, 소속팀은 처음 7경기에서 모두 승리하였는데, 이 중에는 분데스리가 최강 팀 FC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한 원정 경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시즌 종료 후, 팀은 분데스리가 5위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투헬은 기술적으로 열세인 선수들을 보유했음에도, 긴 패스를 활용하고 공을 소유하지 않을 때 압박에 집중하도록 지시하여, 상대 진영의 한 부분을 과부하시켜 상대가 역습 기회를 만들 공간을 줄이는 전술을 사용했다.[18] 이는 끊임없는 고강도 압박이 상대의 공을 빼앗거나 실수를 유발하여 기회를 창출했기 때문이다. 마인츠의 선수 구성은 투헬의 전술적 접근 방식을 보여주었다.[18]
다음 시즌 투헬의 마인츠는 시즌을 완벽하게 시작하여, 바이에른 뮌헨과의 원정 경기에서 승리하는 등, 처음 7경기에서 모두 승리했다.[23] 투헬은 결국 팀을 5위로 이끌어, 클럽이 11포인트 향상되어 2011–12 UEFA 유로파 리그 3차 예선에 진출했다.[24][25]
다음 시즌에는 13위로 떨어졌는데,[23] 여름에 레버쿠젠으로 안드레 쉬를레를 잃은 것이 컸다.[26] 2012–13 시즌에도 마인츠는 이전 시즌과 마찬가지로 13위를 기록했다. 마지막 시즌에 투헬은 마인츠를 7위로 이끌어 2014–15 UEFA 유로파 리그 조별 예선에 진출했다.[27][28]
2013–14 시즌 후반기에 샬케 04와 레버쿠젠이 그에게 접근했음에도, 투헬은 시즌이 끝날 때까지 마인츠에 머물렀다.[30] 2014년 5월, 계약 해지를 요청했으며, "다가오는 여름에 [팀이] 어떻게 다시 혁신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31][32] 마인츠는 처음에 계약 해지를 거부했지만, 2014년 5월 11일에 사임을 허가받았다.[30][33][34] 투헬은 182경기에서 72승 46무 64패, 승률 39.56%를 기록하며 마인츠에서의 경력을 마무리했다.[35]
3. 3.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015년 4월 19일, 투헬은 위르겐 클로프의 후임으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39] 7월 1일부터 효력이 발생하는 3년 계약을 체결하며, 1년 넘게 클럽 없이 지내다가 감독직으로 복귀했다.[39] 클롭과 투헬은 모두 마인츠에서 도르트문트로 이동하는 동일한 경로를 거쳤다.[23]
여름 이적 시장 초기에 합류한 투헬은 도르트문트가 선수들의 야망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설득했다. 몇몇 중요한 선수들의 미래를 확보한 후, 로만 뷔르키, 율리안 바이글, 곤살로 카스트로를 영입했다.[40][41] 투헬은 4–1–4–1 포메이션과 4–2–3–1 포메이션을 활용했다. 율리안 바이글은 4–1–4–1 포메이션에서 두 명의 중앙 미드필더 뒤에서 자주 활용되었다.[18]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첫 14경기 동안 무패 행진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42] 투헬과 그의 팀은 2016 DFB-포칼 결승전에서 바이에른 뮌헨에게 승부차기에서 패배하는 등 2015-16 시즌에 무관으로 마감했다.[43] 그러나, 이 캠페인은 크리스티안 풀리시치가 맹활약하면서 젊은 선수들의 성장을 촉진한 것으로 유명했다.[45] 도르트문트는 2015-16 분데스리가에서 클럽 기록인 82골을 기록했으며, 팀의 평균 리그 점유율 61%와 평균 패스 성공률 85%는 클롭 감독 시절의 팀의 역압박에서 상당한 향상을 보여주었다.[10] 도르트문트는 분데스리가에서 2위를 차지하며 UEFA 챔피언스 리그 진출을 확정했다.[46]
마츠 훔멜스, 헨리크 미키타리안, 일카이 귄도안 등 많은 주력 선수들이 이적했지만, 우스만 뎀벨레, 엠레 모르, 하파엘 게레이루, 알렉산더 이삭을 비롯한 젊은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했다. 결과적으로, 승점 64점을 기록하며 챔피언스 리그 출전권 획득에 성공했다. 2016-17 시즌에는 DFB 포칼에서 우승하며 5년 만에 타이틀을 획득했지만, 한스 요아힘 와츠케 CEO와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2018년까지의 계약을 남겨둔 채 200만 유로 이하의 위약금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계약을 해지했다.
2017년 5월 30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떠났다.[299]
3. 4. 파리 생제르맹
2018년 5월 14일, 투헬은 우나이 에메리의 후임으로 파리 생제르맹 감독으로 선임되어 2020년까지 계약했다.[300] 2019-20 시즌에는 리그, 컵 대회 포함 국내 4관왕을 달성했으며,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클럽 사상 최초로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2020년 12월 24일, 파리 생제르맹 감독에서 해임되었다.[301]
3. 5. 첼시
2021년 1월 26일, 투헬은 프랭크 램퍼드의 후임으로 첼시 FC 감독에 선임되었다. 계약 기간은 1년 반이었으며, 1년 연장 옵션이 포함되었다.[302][303] 부임 후 FA컵에서는 레스터 시티에 패해 준우승에 그쳤으나, 리그에서는 4위를 기록하며 다음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획득했다. 2021년 5월 29일(한국 시각 새벽)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맨시티를 꺾고 첼시의 통산 두 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2021년 8월 12일에는 비야레알 CF과의 UEFA 슈퍼컵에서 승리하며 첼시에게 23년 만에 두 번째 슈퍼컵 우승을 안겼다. 2021-22 시즌 10월에는 리그 전승(14골 1실점)을 기록하여 EPL 이달의 감독상을 받았다.
FIFA 클럽 월드컵 참가 당시에는 코로나19 확진으로 준결승전에 지휘하지 못했으나, 결승전을 앞두고 복귀하여 팀의 첫 클럽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다.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이후 2021년 6월 4일, 첼시와 4년 재계약을 체결했다.[304] 같은 해 7월에는 키커지 선정 독일 올해의 감독상을,[305] 8월 26일에는 UEFA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다.[306] 그러나 2022년 9월 7일, 디나모 자그레브와의 챔피언스리그 개막전에서 1-0으로 패배한 것을 계기로 첼시 감독직에서 해임되었다.[307]
3. 6. 바이에른 뮌헨
2023년 3월 24일, 바이에른 뮌헨은 율리안 나겔스만 감독을 경질하고 후임으로 투헬을 선임한다고 발표했다. 투헬은 바이에른 뮌헨과 2025년 6월까지 유효한 2년 계약을 체결했다.[324] 투헬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분데스리가, DFB-포칼,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목표로 하고, 아르노 미헬스, 뢰브 졸트 등 자신의 축구 코칭스태프들이 합류할 것이라고 밝혔다.[325] 또한, 첼시 FC에서 함께했던 코치 앤서니 베리의 영입을 요청했다.[326]
투헬의 바이에른 뮌헨 첫 경기는 4월 1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데어 클라시커였으며, 4대 2로 승리하며 데뷔전을 성공적으로 치렀다.[327] 2023년 4월 21일, 바이에른 뮌헨은 투헬의 요청대로 앤서니 베리 코치를 첼시에서 영입했다.[328]
2024년 2월 21일, 바이에른 뮌헨은 투헬과 상호 합의 하에 2025년 6월 30일까지였던 계약을 1년 앞당겨 2024년 6월 30일에 종료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329]
3. 7. 잉글랜드 대표팀
2024년 10월 16일, 잉글랜드 축구 협회는 투헬을 차기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했으며, 2025년 1월부터 감독 업무를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330]
4. 감독 스타일
토마스 투헬은 "전술적 카멜레온"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뛰어난 전술적 지식과 유연성을 가진 감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258] 그의 축구 스타일은 유연성과 실용주의를 특징으로 하며, "미학적인 축구"를 추구한다. 즉, 공을 소유하고, 리듬을 통제하며, 매 순간 공격하고, 가능한 많은 골을 넣는 것을 목표로 한다.[36]
투헬은 전술 혁신가로 알려져 있으며, 펩 과르디올라와 비교되기도 한다.[5][6] 첼시 팬들은 그의 전술적 능력을 높이 평가하여 "토미 전술"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260][261][262][263][264]
투헬은 마인츠 시절부터 상대의 강점을 무력화하기 위해 매 경기마다 포메이션이나 전술 구성을 변경하는 등 적응성을 중시했다.[36] 도르트문트에서는 4-1-4-1, 4-2-3-1 포메이션을 주로 사용하며 측면과 상대 라인 사이 공간을 공략하고, 볼 점유율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18][258]
파리 생제르맹(PSG)에서는 주로 4-3-3 포메이션을 활용하여 네이마르, 킬리안 음바페 등 측면 공격수의 능력을 극대화했다.[10] 풀백을 전진시키고, 선수들이 수비와 미드필드 라인 사이 공간을 찾아 상대 팀을 붕괴시키도록 유도했다.[266] 또한, 게겐프레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공 소유권을 잃은 후 즉시 되찾으려 했다.[265][267]
첼시에서는 초기에 선수 교체를 자주 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주로 3-4-2-1 포메이션을 선호했다.[258] 윙백을 통해 볼을 전진시키고, 압박과 역압박을 통해 공격 기회를 창출했다.[258]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4-2-3-1 포메이션을 사용하며 풀백을 깊숙이 배치하고, 윙어를 통해 측면으로 볼을 전진시키는 방식을 택했다.[258] 그러나 이러한 접근 방식은 공간을 만들지 못하는 팀을 상대로 어려움을 겪었고, 역습에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258]
4. 1. 훈련 방식
투헬은 혁신적인 훈련 방식을 도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254][255] 마인츠와 도르트문트 시절, 선수들에게 무릎으로 공을 터치하게 하고, 정확한 패스와 움직임을 위해 훈련장 코너를 잘라냈으며, 불필요한 파울을 막기 위해 수비 훈련 동안 테니스 공을 들게 했다.[12] 훈련은 비교적 어렵고 정신적으로 소모적이어서 실제 경기가 쉽게 느껴질 정도였다고 한다.[36]엄격한 분석가인 투헬은 과거 마인츠 버스 안에서 바르셀로나의 패스 패턴을 보여주는 그래프를 연구하기 위해 펩 과르디올라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두 시간 동안 중단하기도 했다.[256] 투헬은 양궁과 킥복싱을 포함한 다른 스포츠의 훈련 방법을 차용했으며, 한때 마인츠 팀이 핸드볼 클럽과 거의 한 달 동안 훈련하도록 했다. 얀 키르히호프에 따르면, 투헬은 또한 심리 훈련을 강조하며, 선수들의 사고방식에 도전하기 위해 신문 기사나 책에서 발췌한 내용을 정기적으로 공유했다.[256] 초기에는 규율을 중시했던 투헬은 정제 탄수화물 섭취를 금지하고 통밀 파스타와 가벼운 소스로 대체하는 방식을 자신의 클럽에 도입했다. 그는 파리 생제르맹(PSG) 감독으로 임명된 후 이 방식을 변경했다.[256]
첼시와 가까운 소식통에 따르면, 투헬의 첼시 훈련 세션은 가벼운 분위기에서 진행되었으며, 작은 축구공을 사용하거나 일부 게임에서 발 대신 손을 사용하는 등 다양한 훈련이 포함되었다고 한다.[257] 그는 또한 큰 경기가 끝난 후 가벼운 세션을 갖거나 아예 휴식일을 갖는 등 분산된 회복 방식을 사용했다. 안드레아스 크리스텐센에 따르면, 경기 며칠 전에는 훈련 강도가 일반적으로 증가했으며, 전술적인 논의보다는 3대2 패스 훈련 연습과 같은 점유율에 초점을 맞췄다.[256]
훈련에 공을 들여, 지루하지 않고 항상 머리를 써서 상황 판단이 필요한 훈련을 실시하는 것이 특징이다. 마인츠 시절에 투헬의 지도를 받은 오카자키 신지는 "매주 다른 훈련을 한다. 같은 메뉴였던 적은 한 번도 없다"라며 그 훈련 메뉴의 풍부함을 이야기했다.[311] 대표적인 훈련상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311]
- 노란색과 흰색 두 가지 색상의 공을 준비하여 색깔에 따라 터치 규칙을 변경한다.[312]
- 하프 코트의 네 구석에 골대를 설치한다.[312]
- 세로로 긴 피치를 준비하여 백 패스를 한 번으로 제한한다.[312]
- 거의 모든 미니 게임에서 "오프사이드 룰"을 무효로 한다.[313]
- 바나나형이나 항아리형 구역에서 플레이하게 한다.[314]
4. 2. 평가
토마스 투헬은 새로운 축구 트렌드와 아이디어에 대한 적응력이 뛰어나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마인츠를 떠난 후에는 챔피언십 클럽 브렌트포드의 구단주 매튜 베넘을 방문하여 통계 모델에 대해 배우기도 했다. 또한, 기존 코치 대신 온라인 전술 블로그에서 축구 아이디어를 얻는 등 독특한 방식을 추구했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는 스포츠 과학자 볼프강 숄호른이 특허를 낸 "차별적 학습" 개념을 도입했는데, 이는 선수 기술이 반복이 아닌 끊임없이 변화하는 문제에 직면하여 지속적인 조정을 통해 향상된다는 이론이다.[36]
2021년 11월, 바니 로네이는 ''가디언''에서 투헬의 예리함과 경기 전후 TV 출연에서 독창적인 생각을 즉흥적으로 쏟아내는 경향이 그의 축구 접근 방식의 축소판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투헬이 "끊임없는 지성, 모양, 숫자, 아이디어의 놀이로서의 축구에 대한 세부 사항에 대한 강박관념"을 보인다고 언급했다.[272] 투헬 밑에서 뛰었던 곤살로 카스트로는 "투헬은 마지막 밀리미터까지 모든 것을 정확하게 정리한다"고 말했다.[19]
투헬은 강력한 동기 부여자로 알려져 있다. 마인츠 시절 산악 자전거 투어 중 클럽 배지를 묻고 유소년 팀에게 2009년 U-19 분데스리가 결승에 진출하면 배지를 찾겠다고 말한 일화는 유명하다. 콘스탄틴 프링에 따르면 "우리 모두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를 위해서라면 누구라도 죽일 기세였죠."라고 회상했다.[256]
투헬과 클롭 밑에서 모두 뛰어본 니콜체 노베스키는 클롭이 긍정적인 분위기 조성에 중점을 둔 반면, 투헬은 더 미세한 세부 사항에 관심이 많았고, 경기 준비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투헬은 완벽주의자이며 사람들에게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직설적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19] 마커스 베티넬리는 투헬이 선수 및 비선수 스태프와 친밀함을 강조하며, 요리사, 쓰레기 수거원, 정원사 등 모든 구성원에게 가족의 안부를 묻는 등 작은 것들이 편안함을 느끼는 데 도움이 된다고 언급했다.[277] 첼시 주장 세사르 아스필리쿠에타는 투헬의 인간 관리 능력이 첼시의 성공에 핵심이었다고 말했다.[273]
그러나 투헬은 가혹한 접근 방식으로 비판을 받기도 한다. 2021년에는 2014년 마인츠에서 코칭을 받던 숀 파커를 꾸짖는 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275] 또한, 엠레 모르에게 "입 닥쳐!"라고 소리친 사건[276]이나, 일부 첼시 선수들에게 가혹한 비판을 가해 팀에 긴장을 조성했다는 보도[277]도 있었다. 마인츠 골키퍼 하인츠 뮐러는 그를 "독재자"라고 불렀고,[36] 마인츠 측 익명의 소식통은 투헬이 선수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해 많은 선수들이 견디지 못했다고 언급했다.[36] 로만 바이덴펠러는 스포츠적인 면에서는 흠잡을 데 없지만, 인간적인 면에서는 효과가 없는 부분도 있었다고 평가했다.[36]
훈련에 있어서는, 지루하지 않고 항상 머리를 써서 상황 판단이 필요한 훈련을 실시하는 것이 특징이다. 마인츠 시절 투헬의 지도를 받은 오카자키 신지는 매주 다른 훈련을 한다며 훈련 메뉴의 풍부함을 이야기했다.[311] 그의 대표적인 훈련 특징은 다음과 같다.[311]
5. 개인사
투헬은 어렸을 때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의 팬이었으며, 그의 첫 축구 우상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소속의 한스 긴터 브룬스였다.[331][332]
그는 독일의 한 김나지움에 다녔으며, 체육 시간에 배구 전술 전략을 고안하기도 했다. 바덴 뷔르템베르크의 대학에서 경영학 학위를 취득했고, 학생 시절 슈투트가르트의 바에서 바텐더로 일했다.[333][334]
2009년 아내 시시(Sissi)와 결혼하여 슬하에 두 딸을 두었다.[333] 2022년 4월, 시시와는 여러 이유로 이혼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335] 그는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 이탈리아어를 구사하는 다국어 사용자이다.[331]
그는 자신을 "불완전한 채식주의자"라고 묘사하며 최소한의 알코올만 섭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336] 투헬은 범죄 스릴러 소설과 건축 및 디자인에 관한 책을 즐겨 읽으며, 테니스, 록 음악, 힙합 음악의 팬이기도 하다.[333]
6. 기록
클럽 | 취임 | 퇴임 | 기록 | ||||
---|---|---|---|---|---|---|---|
경기 | 승 | 무 | 패 | 승률(%) | |||
아우크스부르크 II | 2007년 7월 1일 | 2008년 6월 30일 | 34 | 20 | 8 | 6 | 58.82 |
마인츠 05 | 2009년 8월 3일 | 2014년 5월 11일 | 184 | 72 | 46 | 66 | 39.13 |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 2015년 6월 29일 | 2017년 5월 30일 | 107 | 67 | 23 | 17 | 62.62 |
파리 생제르맹 | 2018년 5월 14일 | 2020년 12월 24일 | 127 | 95 | 13 | 19 | 74.80 |
첼시 | 2021년 1월 26일 | 2022년 9월 7일 | 100 | 60 | 24 | 16 | 60.00 |
FC 바이에른 뮌헨 | 2023년 3월 24일 | 2024년 5월 18일 | 61 | 37 | 8 | 16 | 60.66 |
합계 | 613 | 351 | 122 | 140 | 57.26 |
6. 1. 대회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DFB-포칼: 2016–17[283]
'''파리 생제르맹'''
- 리그 1: 2018–19,[284] 2019–20[285]
- 쿠프 드 프랑스: 2019–20[286]
- 쿠프 드 라 리그: 2019–20[113]
- 트로페 데 샹피옹: 2018,[287] 2019[288]
'''첼시'''
- UEFA 챔피언스 리그: 2020–21[289]
- UEFA 슈퍼컵: 2021[290]
- FIFA 클럽 월드컵: 2021[291]
'''바이에른 뮌헨'''
- 분데스리가: 2022–23[292]
'''개인'''
- VDV 분데스리가 올해의 감독: 2015–16
- 프리미어리그 이달의 감독: 2021년 3월,[149] 2021년 10월[149]
- 올해의 독일 축구 감독: 2021[293]
- UEFA 올해의 남자 감독: 2020–21[294]
- IFFHS 남자 세계 최고의 클럽 감독: 2021[295]
- 더 베스트 FIFA 풋볼 코치: 2021[296]
클럽 | 취임 | 퇴임 | 기록 | |||
---|---|---|---|---|---|---|
경기 | 승 | 무 | 패 | |||
아우크스부르크 II | 2007년 7월 1일 | 2008년 6월 30일 | 34 | 20 | 8 | 6 |
마인츠 05 | 2009년 8월 3일 | 2014년 5월 11일 | 184 | 72 | 46 | 66 |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 2015년 6월 29일 | 2017년 5월 30일 | 107 | 67 | 23 | 17 |
파리 생제르맹 | 2018년 5월 14일 | 2020년 12월 24일 | 127 | 95 | 13 | 19 |
첼시 | 2021년 1월 26일 | 2022년 9월 7일 | 100 | 60 | 24 | 16 |
FC 바이에른 뮌헨 | 2023년 3월 24일 | 2024년 5월 18일 | 61 | 37 | 8 | 16 |
합계 | 613 | 351 | 122 | 140 |
6. 1. 1.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015~2017)
도르트문트 감독으로 2015년 6월 29일에 취임하여 2017년 5월 30일까지 재임하였다. 도르트문트에서 DFB-포칼 2016-17 시즌 우승을 차지했다.[221]도르트문트에서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경기 | 승 | 무 | 패 | 승률% |
---|---|---|---|---|
107 | 67 | 23 | 17 | 62.6 |
6. 1. 2. 파리 생제르맹 FC (2018~2020)
Paris Saint-Germain FC프랑스어에서의 감독 경력은 2018년 5월 14일에 시작되어 2020년 12월 24일에 끝났다.[248] 투헬은 파리 생제르맹 감독으로 총 127경기를 지휘했으며, 95승 13무 19패를 기록했다.투헬은 파리 생제르맹에서 다음과 같은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6. 1. 3. 첼시 FC (2021~2022)
2021년 1월 26일 첼시에 취임하여 2022년 9월 7일까지 있었다. 첼시에서 UEFA 챔피언스리그 2020-21 시즌, UEFA 슈퍼컵 2021 시즌, FIFA 클럽 월드컵 2021 시즌 우승을 달성했다.[1] 첼시에서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경기 | 승 | 무 | 패 | 승률(%) |
---|---|---|---|---|
100 | 60 | 24 | 16 | 60 |
6. 1. 4. FC 바이에른 뮌헨 (2023~2024)
경기 | 승 | 무 | 패 | 승률(%) |
---|---|---|---|---|
61 | 37 | 8 | 16 | 60.7 |
FC 바이에른 뮌헨 감독 시절(2023년 3월 24일 ~ 2024년 5월 18일) 기록이다.
6. 2. 개인
수상 내역 | 연도 |
---|---|
VDV 분데스리가 올해의 감독 | 2015–16 |
프리미어리그 이달의 감독 | 2021년 3월[149] |
프리미어리그 이달의 감독 | 2021년 10월[149] |
올해의 독일 축구 감독 | 2021[293] |
UEFA 올해의 남자 감독 | 2020–21[294] |
IFFHS 남자 세계 최고의 클럽 감독 | 2021[295] |
더 베스트 FIFA 풋볼 코치 | 2021[296] |
6. 3. 감독 기록
7월 1일6월 30일
8월 3일
5월 11일
도르트문트
6월 29일
5월 30일
생제르맹
5월 14일
12월 24일
1월 26일
9월 7일
뮌헨
3월 24일
5월 18일